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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Archive

7월의 근황

멜티드 2015. 7. 21. 01:13

1. 사유가 없는 직관은 공허하고 직관이 없는 사유는 맹목적이다.

무슨 소린가 싶던 말이었는데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깨달아간다.


2. 일이 바빠 6월부터 영 정신이 없었는데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는 혼을 쏙 빼놓는다.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고.


3. 바쁘다는 게 요즘 글을 쓰지 않는 주된 이유는 아니다. 처음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써야겠단 감이 오기 전까지는 한 자도 쓰질 못하고, 미완성의 글을 공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게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부차적인 이유일 뿐. 언젠가부터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내 글에 본질이 없다는 걸.


어떤 사건의 나열만을 위한 글이 아닌가 싶은 순간부터는 허무했다. BL이라는 장르 안 다수의 글이 그러하듯, ‘왜’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나, 글 속 대상들이 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묘사하는 글은 많지 않다. 왜냐면 그걸 지루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게 어렵거든. 본질을 잃으면 놓치는 게 너무 많아진다. 결론적으로 자극적이지만 어딘가 익숙한 성애묘사나 사건의 진행에 불과한 글을 쓰게 되는 거다. 같은 이유로 요즘은 다른 글을 읽는 것도 재미가 없다. 구도가 비슷한 글을 너무 많이 마주하는데 그와 비교해 내 글만의 특색을 제대도 꼬집어낼 수 없으니 여태 뭘 했나 싶은 거다. 말초신경보단 가슴을 징하게 파고드는 글이 필요한데 나는 그 점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4. 허연, <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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