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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Archive

내일 보자고? 싫습니다.

멜티드 2015. 3. 1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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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성 짙은 사담주의


1. 스물 셋. 그 때 나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나’ 밖에 없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마지막 학기가 닥쳤을 때 3개월 간 조용히 앓았다. 내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흔한 존재같다는 생각이 주 원인이었다. 누구의 무엇도 아닌 취업을 앞둔 이로서 사회라는 큰 틀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했는데 그 부담스러운 무게가 한없이 자신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밤엔 잠들지 못해 뜬 눈으로 나의 존재가치를 환산하기 바빴다. a b c d 로 답을 찍는 토익을 공부하는 와중에도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이 더 길었고, 나름 고심해서 고른 회사의 인턴 면접에서 몇 번이고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사회적 자아를 강하게 키우면서 나는 기업에 순응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지향점을 명확히 했다. 신념이 단단해질수록 회의감도 누적됐다. 아무리 촛불을 들어도 민주주의나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의식 변화가 없는 사회가 지긋지긋했다. 불행히도 커리어를 쌓고 싶었던 분야는 ‘영어 능통자, Fast learner, 해외경험 선호, 적극적 성향, OA 능숙자’ 따위를 조건으로 내걸면서 이런 대단한 회사에서 사회초년생에게 일할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선심쓰듯 무급이나 열정페이를 강요했기에 더더욱 이 사회가 싫었다. 그리하여 사회와 기업에 대한 불신을 가득 쌓아둔 나는 수능 상위 n%, 문과에서는 그나마 낫다는 상경계에 LC만점을 찍어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준비된 폭탄이나 내부 고발자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때론 술에 취해 울며 망할 놈의 세상과 반성이 없는 시대에 대한 울분과 고통을 토로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므로 내일도 살아가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회와 마주한 극적인 타협이었다. 내가 속한 곳이 얼마나 거지 같건, 그 속이 다른 구성원들이 얼마나 치열하건 나를 오롯이 사랑하려면 살아남는 자가 되어야 했으므로 아픈 현실을 꾸역꾸역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불합리한 처사를 내려도 거부하거나 머리 속에 맴도는 욕을 퍼붓기보다 표정을 굳힐 지언정 원하는 대로 해바치는 식의 생존법을 배웠다. 기업이 사랑해마지 않는 Fast learner의 미덕을 체화하며 나는 때론 상사의 멍청한 명령에도 웃을 줄 아는 인간으로 사회적 인격을 다듬어갔다. 가끔 내게 부패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모두들 내 만들어진 인격을 정상이라 여기며 좋아하는 사회에서 그런 우려는 기우였다.



2. 내 인생 최대의 실수는 첫 직장 선택도 그런 식으로 했다는 점이다. 원하는 직무로 지원했던 직장에서 다른 직무로 오퍼가 왔다. 토론-집단-PT-영어-임원대면까지 하루를 꼬박 쏟아부은 면접의 결과였다. 윗선에서 나를 좋게 봤고, 인사담당자도 내가 맘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지원했던 직무는 경력이 있는 지원자로 채우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른 채 멍했다.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도 없었지만, 그 즈음의 나는 몇 번이나 반복되는 기업과의 밀당이 지겹다 못해 지쳐있었고 그런 식의 타협에 익숙해져있었다. 내부 정보는 부족했지만 괜찮은 연봉과 수평적으로 ‘보이는’ 회사 분위기, 빠른 선택을 종용하는 기업의 꾀에 넘어가 나는 이틀 만에 입사결정을 했다. 그 결정을 하고 나서 나는 비로소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3. 그렇게 들어간 직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상식적인 조직이었다. 끊임없이 수평적인 소통을 강조하던 임원의 말이 무색하게 들어오자마자 열 살 이상 많은 시니어들은 내가 첫 회식에서 술잔을 들고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싸가지 없는 신입(년)’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아무리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녀도 거리를 두는 선배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묵묵히 내 몫의 일을 해내려 애썼다. 가르쳐주기를 주저하면 알아서 방법을 찾는 식이었다. 나중에 비교적 그들과 허물이 없었던 남자 동기를 통해 선배들의 입에서 나온 어처구니 없는 내 뒷담화와 그들이 구축해놓은 나의 이미지에 대해 들었을 때는 속은 상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유치함을 비웃을만한 여유는 있었다. 아, 이런 덜자란 어른들이 있기에 사회가 이 모양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오해를 하나 풀면 또다른 근거없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실적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새로운 타깃에게 화살을 돌려 공공의 적으로 만듦으로써 조직 내부에서 서로 눈 밖에 나지 않는 평화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는 졸렬한 전략이었다.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되면 내 표정이 일기예보라도 되는 듯 열심히 관찰하는 여러 개의 눈들은 어찌 그리 비겁하던지 내게 직접적인 충고도 한 마디 못했다. 겁 많고 굽신거리는 게 몸에 벤 직속사수는 모든 걸 알면서도 굳이 해명하려 들지 않았고 방관했다. 오죽하면 내 고군분투가 안 쓰러웠던 다른 팀 팀장이 안 맞는 조직에 억지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언질을 주기까지 했다.


우습게도 내가 인간적으로 가장 존중하고 믿었던 임원이 그 얄팍한 소문에 넘어가 인격적인 모독을 퍼부었을 때, 나는 더 이상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최악인 건 원초적인 비난의 본질이 ‘어린 여자’라는 점에 집중되었다는 것이었다. 도도하게… 핸드백… 어쩌고 하는 말이 나왔을 때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남초 회사에서 가장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알았더라면 반년 간 버티지 않았을텐데. 퇴사와 동시에 내 커리어와 자존감도 무너졌다. 



4.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재취준은 더욱 쉽지 않았다. 첫 직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절감했다. 쓰기도 민망하고, 쓰지 않자니 텅 비어버리는 경력사항은 끈질기게 발목을 잡았다. 


오늘이 그 단적인 예였다. 오버스펙을 지적하다가 퇴사사유를 집요하게 캐묻던 인사담당자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대보라고 종용했다. 결국 ‘비합리적인 행태가 잦았다.’는 내 말에 그는 코웃음쳤다. 원하는 대답이 그런 모호한 말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알았지만 굳이 전직장 뒷담화를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게 재취준을 준비하며 닳도록 새긴 충고였다. 그딴 이유로 퇴사자가 잦은지 인사담당자는 같은 질문은 반복한다. ‘실적이 안 좋았다거나, 상사랑 불화가 있었던 건 아니고?’ 후자는 존나 맞는 사실이지만 까발리는 순간 ‘저는 사회부적응자입니다.’로 걸러들을 게 빤했다. 간단히 사례를 들어서 비합리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사원 레벨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하냐.’로 질책이 이어진다. 빙빙 둘러가며 대답에 대한 힌트까지 주지만 나는 오기로 입을 다문다. 결국 듣고 싶은 말은 하나다. ‘다 제 과실입니다.’ 결국 여기도 미친 회사구나. 끝까지 원하는 대답은 해주지 않는다. 또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기업에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상당히 잦아요. 지금 XX씨가 한 말은 우리 입장에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거든요….’ 당신이야말로 인사담당자라는 감투를 쓰면 면접대상자는 무조건 자기 인생과 가치관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착각에 단단히 빠지셨거든요. 애초에 마음을 열어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힘든 일인데. 거기에 만들어놓은 틀을 들이대는 면접관들 앞에서 내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알다시피 가파르게 성장하는 곳이라 그만큼 업무가 많아서 앞으로 주말과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 거라느니, 애인이 있으면 미리 헤어지는 게 낫다느니, 부모님이 야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느니, 우리 회사엔 화장한 여자가 없다느니, 주량이 얼마나 되냐는 개소리를 반복하던 인사담당자와 실무자 앞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어이쿠, 대단들 하셔라. 나는 그 정도로 당신들 회사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면접을 마무리하며 인사담당자는 신입으로 입사하고 싶다는 나를 두고 굳이 전직장의 연봉을 묻는다. 맞춰줄 것도 아니면서. 액수를 말하자 그는 놀라는 척 한다. 어이쿠, 신입으로 그 정도 받기는 힘들텐데-. 그럴 줄 알았다. 후려치기 바쁜 연봉 계산기 앞에서 나는 대충 액수를 부른다. 연봉 협상만 해도 하루는 걸릴 것 같은데 오늘 밤 합격 연락이 가면 내일 당장이라도 출근할 수 있냐고 묻는다. 어휴, 끝까지 지랄. 그냥 웃어주고 나왔다.



5. 이제 이런 일에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어떻게 마주하는 순간 순간마다 아픈 건지 모르겠다. 내게 면접은 나의 존재가치를 굳이 기업의 화폐가치로 환산해 나를 팔아넘긴다는 느낌이 들어 그러지 않아도 힘든 절차다. 기업과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지 알아보는 테스트에서 논리적인 척하며 감정을 죽인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수동적인 병신으로 전락하는 느낌이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가치관을 뒤흔든다. ‘내가 너를 사용해줄 테니 원하는 답을 내라.’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행복할 수 있을까.  



6.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더 현명하게 불합리성에 대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더 사랑하고, 나에 대해 잘 알게 되는 줄 알았는데 왜 나는 스물 셋의 그때에서 조금도 자란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지. 울적하고 가슴이 답답한 밤이다.



7. 내일 보자고? 싫다. 난 내일을 살테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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