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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살아볼 권리, 깨끗하게 꿈을 포기할 권리, 단순하게 사랑할 권리.

그 시행착오를 나무라지도, 미화하지 않는 청춘 영화 <스물>


(사족이지만 대체 홍보 문구를 왜 이렇게 뽑았는지 모르겠다. 뭉치면 터지는 놈들? 모를... 모를 카피.)



0. 영화 <스물>을 보고 나오며 어떤 이들을 유쾌한 청춘 영화였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입가에 미세한 진동도 오지 않는 (이른바 ‘입미진오’) 쓰레기 영화라고 했다. 내 감상평은 전자에 가깝다. 실로 영화관에서 그렇게 박장대소한 게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연초를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무거운 영화로 연 게 잘못이었을까. 3월 초 <스물> 시사회가 있기까지 2015년 들어 영화관에서 본 13편의 영화들 중 맘 놓고 웃은 작품은 정말 드물었다.

1. 나는 종종 매체가  ‘열정을 다해 힘들 것’이 청년의 의무인 것처럼 주입한다고 느낀다. 본인들의 주관이나 방향성도 파악 못한 것 같은 제작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내려치는 채찍을 계속 맞다보면 멀쩡하던 젊은이도 병신 같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세가 그렇다보니 20대를 그린 근래의 독립영화들은 대개 주인공이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시작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나 (그 과정에서 무시무시한 악성범죄에 연루된다.) 종국엔 극복하지 못하는 감정적 파괴와 절망을 그린다. 나는 그 단적인 예가 배우 변요한의 필모그라피에서 잘 나타난다고 본다.
<들개>의 정구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본성을 억누르면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애완견이고, <리타르단도>의 유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너무 느리게 피는 재능에 억눌려 친구의 사망보험금으로 재기를 꿈꾸는 청년이다. <소셜포비아>의 지웅 역시 고시원에서 몇 년째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다가 스트레스 해소의 대안으로 SNS를 찾는 불행한 청춘이며, <목격자의 밤>에서 연기한 지훈도 삶에 쪼들리는 소시민으로서 기득권층이 저지르는 불의를 보고도 대응하지 못하는 절망을 그린다. 그가 출연한 수많은 독립/단편영화 중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청춘은 기껏해야 <재난영화>의 요한 정도인데, 그마저도 시대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날뛰는 자신들의 행위를 ‘재난’이라 칭하니 자주적이기보단 자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이런 상황에서 다들 심장이 쫄깃했다던 화제의 상영작 <위플래시>도 내게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작품이 되었다. 나는 <위플래시>를 보며 몰입을 체험했지만, 전율을 느끼진 못했다. 열정에 대한 압박감와 숨쉴 틈 없는 긴장감이 나를 극도의 스트레스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2. 그래서 사고회로가 지나치리만치 단순한 (차치호처럼 고민을 하려는 노력조차 않는 이를 포함한) 스무 살의 세 캐릭터가 더욱 편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때로 기로에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서성일 수도 있고, 아무런 준비 없이 환상만 쫓다가 현실을 맞닥드리기도 하고, 오랫동안 공들여 가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번복에 대해 욕먹지 않을 권리도 있다.
개인적으론 그 부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 스물은 깊게 좌절하기엔 그만큼 치열하게 이루려 노력한 게 부족했고,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자니 막막해 같은 범위를 맴도는 그런 시기였다. ‘남들은 다 좋을 때라고 하는데 정작 자신은 무엇이 그리 좋은 지 모르겠다.’던 청춘의 모호함을 방관하는 것이 마냥 나쁘거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아 외려 기뻤다.

3. 아, 그래도 취향 타는 영화임을 유념해둘 것. <남자사용설명서> 같은 B급 무비가 그렇듯 이 영화도 이병헌 감독과 개그코드가 맞지 않으면 상영시간이 괴로울 것이다. 내 경우에 불편했던 건 마초적인 시선 같은 게 아니라 (그건 홍상수 영화를 봐도 똑같다.) 세 배우가 기대하라던 (그러나 어디서 웃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슬로우 모션 소소반점 격투씬이 그랬다. 내가 슬랩스틱 코미디나 타란티노식의 연출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그건 취향의 차이라고 치자.

4. 그와 별개로 가볍다고 해서 내용이 전혀 없다고 결론짓는 평은 속상하다. 꼭 어딘가 무겁거나 감동을 주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걸 담아야 주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누군가 당신이 지나온 스물의 깊이를 재려한다고 상상해보라.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에서 이런 류의 깊이 논쟁은 의미도 없고, 때론 숨막힐 정도로 끔찍하다. 돌이켜보면 우린 그들보다 좀 덜 병신 같았을 뿐이지 스물 언저리에서 각기 다른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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