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제 2 원에서는 불륜을 저지른 연인들이 서로 끌어안은 채 바람에 휩쓸려 영원히 빙글빙글 도는 형벌을 받는다. 단테는 왜 그걸 형벌이라고 생각했을까? 네 목소리가 불쑥 끼어든다. 천국에서도 찾기 힘든 로맨틱한 광경이잖아. 같은 생각을 하던 차였다. 애욕이라는 죄목에 지나치게 걸맞는 처분이라 차라리 천국의 시기를 받지 않을까. 내가 단테라면 베아트리체와 평생 그 원을 도는 쪽을 택하겠어. 웃는 입매지만 단단한 눈빛으로 손을 내민다. 어때? 나의 베아트리체는, 저와 애욕의 왈츠 한 곡 추시겠습니까? 픽 바람빠진 웃음소리와 함께 내가 되묻는다. 한 곡의 길이가 얼마나 되죠? 저 체력 약한데. 춤은 끝나지 않을 테지만 내가 평생 당신을 감싸안고 갈테니 걱정 말아요.
멈춰버린 시계를 차고 나왔다/ 임솔아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봤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전화를 끊고 나면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 원 월세 입금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렸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먹던 엄마처럼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죽고 싶다는 ..
1. 사유가 없는 직관은 공허하고 직관이 없는 사유는 맹목적이다.무슨 소린가 싶던 말이었는데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깨달아간다. 2. 일이 바빠 6월부터 영 정신이 없었는데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는 혼을 쏙 빼놓는다.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고. 3. 바쁘다는 게 요즘 글을 쓰지 않는 주된 이유는 아니다. 처음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써야겠단 감이 오기 전까지는 한 자도 쓰질 못하고, 미완성의 글을 공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게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부차적인 이유일 뿐. 언젠가부터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내 글에 본질이 없다는 걸. 어떤 사건의 나열만을 위한 글이 아닌가 싶은 순간부터는 허무했다. BL이라는 장르 안 다수의 글이 그러하듯, ‘왜’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생각이 ..
애정감쇄반응에 대한 정리 (Love Diminution Theorem) 다음은 애정문제가 얼마나 얄궂은지 파악하기 위해 세운 가설이다. ─사랑해서 무언가를 떠맡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흔하다. 보편적이지만 소중했던 사명이 짐으로 느껴지는 순간부터 애정의 감쇄반응이 시작된다. ∴ ⓐ사랑은 그 대상으로 인한 부담감을 얼마나 온전히 책임지고자 하는가의 문제다. ⓐ로부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순수한 의미의 애정을 덜어낸다’는 뜻이 성립된다. (사랑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 비대해진 사이 지탱할 힘을 잃은 자신의 균형을 찾기 위한 의도일지라도 손익계산이 깔리기 때문이다.) ∴ ⓑ애정감쇄공식에서 모멘텀은 가변적이므로 책임의 무게에서 멀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비워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